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글라스노스트 · 페레스트로이카 (문단 편집) == 발단: [[고르바초프]]의 취임과 [[개혁]] == [[1985년]], 이처럼 암울한 상황에서 마침내 [[미하일 고르바초프|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]]가 소련 공산당 [[서기장]]에 취임한다. 비교적 젊은 [[나이]]에 [[권력]]의 정점에 오르게 된 고르바초프의 급진적인 개혁은 소련의 [[사회]] 전반에 폭풍우를 몰고 오게 되고, 이는 [[1991년]] 결국 [[소비에트 연방]]의 역사적인 해체와 본인의 실각으로 이어진다. 고르바초프가 청년기를 보낸 [[니키타 흐루쇼프|흐루쇼프]]의 집권기는, 강력한 통제와 억압으로 점철된 소련의 [[역사]] 속에서 잠시나마 [[해빙]]의 분위기가 사회를 휩쓸었던 시기이기도 했다. 이러한 젊은 시절의 [[경험]]에 더해 소련의 경직된 관료 사회를 몸소 겪었던 고르바초프는, '''[[서기장]]에 임명되기 전'''에 이미 '''소련의 [[공산주의]]를 서구의 [[사회민주주의]]와 유사한 모델로 변화시켜야 한다'''고 주장하는 등 일찌감치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. 고르바초프의 [[정책]]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. * '''글라스노스트(Гласность/Glasnost)''' [[정보]]의 [[자유]]와 공개를 의미한다. 당시 소련에 만연해 있던, '''[[언론]] [[검열]] 및 어용화, [[사상]] 탄압 등 [[경찰국가주의]]'''에 대한 변혁을 의미한다. 흔히 ''''개방''''으로 번역된다. * '''페레스트로이카(Перестройка/Perestroika)''' 정치·경제적 개조를 의미한다. '''부패한 [[관료제]] 타파''', '''[[공산주의]] 경제의 체제적 한계점을 개선'''하고 '''점진적인 시장자유화를 추구'''하는 등의 [[정책]]을 포함한다. 흔히 ''''개혁''''으로 [[번역]]된다. 대외적으로는 [[모스크바]]의 노선에서 벗어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공식적인 간섭권을 명기한 [[브레즈네프 독트린]]을 폐기하는 한편,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정책지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.[* 이는 고르바초프가 [[1987년]] [[11월 4일]], [[러시아 혁명]]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각국 사회주의 국가 사절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밝힌 것으로 자신과 다른 견해의 수용을 거부하는 오만과 폐쇄성은 생산적인 [[토론]]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오히려 사회주의 운동을 저해한다고 [[비판]]했다. [[https://youtu.be/NwnYObGuscU?t=85|한국 보도 내용]]] 이어 경제 규모가 소련의 2배에 달하는 [[냉전|미국과의 군비경쟁]]에 더 이상 [[희망]]이 없다고 판단하여 각종 [[군비축소|군사용 무기 감축]]을 시도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